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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청사진’ 고교학점제, 더 늦기 전에 전면 재검토해야

기사승인 2020.11.17  12: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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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대전지부 성명서 전문]

대전광역시교육청은 어제(16일) 대전 관내 모든 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고교학점제 지원을 위해 중등 부전공 및 복수 자격 취득 연수 교과목 수요조사를 실시한다”고 안내했다. 개설 교과는 교육학, 정보·컴퓨터, 상담, 심리학 등 보통교과 37개와 농공, 동물자원, 미용, 연극영화 등 전문교과 31개에 이른다.

지난 11월 4일 단체교섭 테이블에서 대전시교육청 임창수 교육국장은 “내년도 대전 중등 교원 정원이 100명 정도 줄어든다. 그리고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에 20명 규모의 인력풀을 두어 순회교사로 근무하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하 감축은커녕, ‘노동 유연화’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는 위기감에 교직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2025년 완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현장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고교학점제 운영을 통한 진로 맞춤형 교육”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으로, 학생의 과목 선택권 및 다양성 보장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개별로 수강 신청하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게 한다는 그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지식 전달 중심의 획일적 교육과정에 환멸을 느껴온 까닭에, 고교학점제가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자는 학생들을 깨워 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막연히 기대한 게 사실이었다. 고교학점제가 ‘선택권 보장, 다양성 제고, 맞춤형 진로 탐색’ 등의 진보적 교육 의제를 외피로 두르고 있으니 더욱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연구학교 및 선도학교 운영 사례와 관련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시간이 흐를수록 고교학점제는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 근거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교육적으로 고교학점제가 올바른 방향인지 논란이 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일부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여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먼저 교육적 측면을 생각해보자. 이현 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2017년 발간한 「진보교육」 학술지에서 “후기 중등교육과정(고등학교 과정)이 ‘진로탐색’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고등학교 과정은 보편적 교양 교육에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조기 진로/직업 맞춤형 교육은 가변성을 특징으로 한 4차 산업혁명 및 창의융합 교육과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가 교육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도―공교롭게도 위에 언급한 전 참교육연구소장과 동명이인이다―지난 2018년 「교육비평」에 게재한 논문에서,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가 미래인재의 양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고1 수준에서 진로설계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는 진로 개척의 논리는 급변하는 사회현실에 대한 교육부의 예측과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교육적 방향”이라고 짚었다. 그는 또한,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다양한 교육과정의 도입은 학교 내 교육과정의 서열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서열화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번 양보해서 교육적으로 일부 긍정적 측면을 인정한다 치자. 단언컨대, 고교학점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근거는 아래와 같다.

고교학점제의 현실적 문제 중 가장 큰 장애 요소는 교사의 수급이다. 단위 학교에서는 사실상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학점제의 시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서울 도봉고의 경우, 2~3학년 교육과정에서 계열 구분 없이 학년별로 주어진 과목 중 선택권을 부여했다. 학점제라기보다는 과목 선택권 확장이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정원은 줄이면서,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에 기껏 수십 명 규모의 순회교사를 두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난센스다.

고교연합형 학점제 운영방식도 한계가 분명하다. 매 학기 학생들의 수요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단기 고용의 강사 인력풀이 필요해 비정규직 교원들이 대거 양산될 것이다. 교원자격증이 없는 자의 교단 진출도 막기 어렵다. 학생 관리도 점점 어려워지고, 학급 공동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일부 학교의 공간 재구조화로 시설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고교학점제의 또 하나의 현실적인 장벽은 대학입시다.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입시 자료로 활용할 수 없으므로 수능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할 경우(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대학별 고사나 학종의 탈을 쓴 변종 대학별 고사가 선발 도구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의 입시 현실에서 고교학점제는 (자사고에 부여한 교육과정 자율성이 사실상 입시몰입 교육과정으로 변질된 사례가 증명하듯이) 입시 준비에 최적화된 교육과정으로 변질될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일반 고등학교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대격변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는 교육부는 그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 대전시교육청 역시, 교육부 로드맵에 맞추어 연구학교와 선도학교를 운영할 뿐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학교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고교학점제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의견수렴과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해선 안 된다. 성과 포장에만 열을 올리는 연구학교, 선도학교 운영 사례가 ‘현장 적합성’을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2020년 11월 1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전지부

김기석 기자 msay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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